상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을 상상만으로 떠 올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들 중 하나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상상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 대부분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의 새로운 조합 또는 그로 부터 차용해 온 일종의 복사본 같은 것일 뿐이다. 빨간색을 본적이 없는 사람은 빨간색을 상상할 수 없다. 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뜨겁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늠하지 못 할 것이다.
이런 단순 인과관계 뿐만이 아니다. 외계인을 묘사한 그림들을 봐도 그렇다. 외계인이란 존재는 아직까지 인간이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므로 이는 그 자체로 인간의 상상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모두 지구의 생명체들 처럼 눈코입을 갖추고 있다. 머리가 좀더 크거나 귀가 비정상적으로 작거나 있어야 할 것이 하나 또는 둘 정도 생략되었거나 하는 차이일뿐. 팔다리도 마찬가지다 간혹 팔다리가 없는 외계인의 모습은, 팔다리가 없는 지구의 생명체중 어느 하나와 틀림없이 닮았다. 그렇지 않은 외계인의 모습을 본적이 있다고? 찾아서 나에게 보여줘라. 그럼 나는 그와 비슷한 지구 생명체를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전혀 새로운, 그러니까 생명이란 것이 이런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낼 만한 외계인의 그림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지구에는 70억이 넘는 인간들이 존재하고 인간의 의식이 적어도 수십만년이상 지속되어온 것을 감안하면 - 물론 모든 인간들이 외계인을 상상한 것은 아니지만 - 외계인에 대한 '인간의 상상'이란 것은 애처로울 정도로 빈약한 것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획기적인 외계인의 모습을 제시해 보라는 악다구는 하지 말기 바란다. 그런 상상력은 나에도 '역시' 없다. 그러니까 나도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상상이란 별 것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