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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 생각

Carpe diem [카르페 디엠]

by 구경거리 2012. 2. 6.


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

많은 종교에서, 많은 성인들의 말에서, 많은 책에서, 행복하려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불확실한 미래에 사로 잡히지 말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 현재를 저당 잡힌 삶은 불행한 삶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를 산다'는 명제가 말 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물론 우리의 육체는 물리적으로 당연히 현재라는 시점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 할 때 육체의 경험만을 따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삶이란 육체의 경험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그 결과을 받아들이는 정신의 작용과 더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삶을 규정하는 이런 정신의 작용 과정은 항상 현재를 시점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인간의 생각이란 것의 대부분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분석, 회상 또는 집착 이거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 또는 희망이다.
아침에 늦잠을 잤다. 회사에 늦었다. 어제도 늦었는데 오늘도 늦으면... 하는 생각에 마음은 이미 조급하다. 지각에 대하여 자신이 감수 해야 할 대가을 생각한다. 상사의 꾸지람이 끔직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꾸지람으로 인해 구겨질 자존심을 생각한다. 요행을 바라기도 하고 지각이 뭔 대수야 라며 자신의 마음을 애써 다스려 보기도 한다. 모두 지각이 발생한 시점에 대한 생각들이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찬 그 또는 그녀는 혹 지하철에서 자신의 운명의 소울메이트를 마주친다 하더라도 알아보지 못 할 것이다. 출근길에 하려 마음 먹었던 중요한 전화를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무리 걱정을 하고 애를 태워도 사무실까지 자신을 이동 시켜주는 교통수단이 더 빨라지지도 더 느려지지도 않는다. 그 또는 그녀가 사무실에 도착할 시간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아무튼 그 또는 그녀는 자신의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 출근 길이라는 현재는 가까운 미래에 고스란히 바쳐지고 만다. 너무 소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대범한 사람도 정도의 차이가 있거나 원인이 되는 사건이 다를 뿐 신경 쓰이기는 일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현재를 미래에 저당 잡히는 삶의 극단적 형태는 종교가 비정상적인 힘을 발휘하던 중세시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내세에서의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만 마침내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절대적이었던 시대. 한 사람의 일생은 죽음 이후에나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통째로 저당 잡히게 된다.

'현재를 산다' 라는 명제에서 '현재' 라는 단어에 시간적 현재 뿐만 아니라 존재의 현재도 포함시키고 싶다. 현재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적확하게 알지 못 한다면 현재를 살아 간다는 것은 애초 부터 불가능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마음 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런 소원과 마음이 진정 나의 것인지에 대하여 알 수 없다는 것은 '삶' 이라는 범주에서 '현재'가 의미하는 그 무엇을 알 수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 정말 나의 것인가? 현재 자신의 생각(인식) 속에 그려진(인식된) 자신과 실존적 존재로서의 현재의 자신은 항상 일치하는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YES' 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프로이트를 계승한 프랑스의 정신분석자 라캉은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망상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인간의 생각이 현재에 남아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다면 그는 자신의 삶에서 현재를 정의하는 것 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에 충실한 삶, 존재와 생각이 일치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이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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