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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 생각

내가 정말 원하는 제목?

by 구경거리 2012. 1. 23.
누군가 보고싶다.
아니다 딱히 누군가 보고싶지는 않다.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그냥 지금 이대로 혼자인 것이 좋다.

무언가 부족하고 아쉬운 듯도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대로가 못 견딜만큼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누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가 이기를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간절한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가 무엇을 원하건 그것은 내 밖의 무언가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내가 알고 있지 못하는 나의 숨겨진 어떤 결핍이 그 누구를 보고싶다 느끼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는 그런 류의 인간 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맞다고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있기나 할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왜 모르냐고? 나도 그런 것 쯤은 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나의 그것' 인지 확신하지 못 할 뿐이다. 무슨 소리냐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이것 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시 돌아보면 그 때 내 생각이란 것이 사실은 그렇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아서, 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그런 경우, 과연 그 생각이 정말 자신의 것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첨삭이 이루어지고 세상의 잣대에 한껏 휘어지고 난 후에, 일종의 그런 왜곡의 과정을 거친 후에 머리속에 어렴풋이 떠오른 그 무엇을 진정한 나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또는 지금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이 그런 왜곡의 과정을 피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왜곡의 과정은 인식 이전의 단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무의식 이라 칭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의식으로 상이 맺혔다는 것은 그런 왜곡이 발생할 수 있는 단계의 다음으로 진입 했음을 의미한다. 그 상은 왜곡의 과정을 거쳤을 수도 피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지금 느끼는 나의 생각이란 것이 인식의 이전 단계에서 왜곡의 과정을 거쳐 변형된 것인지 아니면 운 좋게도 그것을 피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적어도 신이 아닌 우리 인간의 의식으로는 말이다.
 
내가 순수하게 간절히 원하는 것과 그럴듯 해보이기 위해서 원하는 것이 서로를 침범하고 끌어 안고 뒤집혀 어떤 방법으로도 경계를 그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것인가 하면 저것이 되고 저것인가 하면 다시 이것 되어 버린다. 구분할 수 없이 뒤엉켜 버린 마음은 그래서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외부의 어떤 것에도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내 마음 그 자체 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애매함이 주는 불편함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 괴로운 것은 진정한 내 마음이 무엇인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이것이 내 마음인 것 같고 저것이 내가 원하는 것 같다라는 아니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내 모습을 스스로 위장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원하는 것 같아서 원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정말이야 라는 의심을 한켠에서 힘겹게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억압되는 만큼 농밀해 질 것이고 언제가 임계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을 지나 결국엔 어떤 형태로든 터져 버릴 것이다. 찢겨져 버린 풍선처럼 초라한 모습만 남겨진 스스로를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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