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짜 생각

1

by 구경거리 2013. 10. 21.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가 없다.

아무 의미를 알아 차릴 수가 없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햇살이 있고, 푸른 잎의 나무가 있고, 파란 하늘이 있다.

그런데 그게 뭐?

햇살이 따스하다는 것도, 나무잎의 푸름도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의미도 전해 주질 않는다.


고독한 인간들...

그러나 고독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각자는 상대에 대한 인식으로 고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한 남자가 아기를 안고 걸어간다. 아기를 안은 손과 팔이 조심스럽다.

남자는 아기에 대한 인식으로 고독스러울 시간이 없어 보인다.

모두들 각자의 머리속을 빈틈 없이 채우고 있는 생각들, 생각에 따른 또 다른 생각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인식의 연쇄로 전혀 고독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리 허무해 보이지도 공허함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다.


자연에 대해서도, 인간들에 대해서도, 이 세계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 그 어떤 느낌도 잡아 낼 수가 없다.

마치 나의 모든 감각기관들이 두터운 각질에 포위 당한 듯.

무엇이건 느껴보려 애를 써보지만, 느껴지는 것은 각질층을 통해 전해오는 툰탁하고 무뎌진 압력 뿐이다.

어떤 질감과 어떤 모양의 것이, 얼마 만큼의 압력으로, 어떤 방향에서, 어떤 지점으로 눌려지는지 아무것도 알아 낼 수가 없다.

그저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의 인식, 잠결에 누군가에 의해 방문이 닫힌 것 같다는 식의 희미함이 느껴지는 모든 것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것이 아니다.

스치기만해도 그것의 냄새와 질감과 더불어 그것이 전해오는 방향과 거리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 있는 그 명료하고 군더더기 없는 감각,

그 감각이 전해주는 일말의 과장도 티끌만한 손실도 없이 있는 그대로 딱 그만큼 전해지는 그 어떤 느낌 또는 의미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초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인간, 어떤 질문  (0) 2014.02.03
2  (0) 2013.10.21
선택장애  (0) 2013.08.16
자기기만. 구토.  (0) 2013.08.06
201208102036  (0) 201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