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에 고인 세계 집을 나선 시간은 오후 3시가 다 되어서다.점심때가 지났다며 밥 한술 뜨고 가라는 소리를 뒤통수로 튕겨버리듯 그렇게 집을 나섰다.아침 한때 내렸던 비 때문인지 매일 보던 풍경이 매일 보던 풍경 같지 않았다.한동안의 더위가 남겨놓았던 희뿌연 수증기 같은 것들이 깔끔하게 치워져 어디까지든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투명한 날이다.아직 남아 있는, 조금은 음흉스럽게 보이는 비구름에 햇빛 마저 가려져 눈부심도 없다.원근감이 사라진 2차원의 극단적 선명함만 남은 풍경이다.꽤 쌀쌀한 한기를 머금고 있는 공기가코끝에서 시작하여 폐에 이르는 길목의 모든 세포에 깨끗하고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새로운 에너지는 점막을 뚫고 세포막 사이를 건너 몸 전체로 퍼져간다.절기에 맞지 않는 더위로 인해 찜통속 생크림처럼 흐물흐물 녹.. 2011. 11. 6. 이전 1 다음